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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사기꾼이라는 책은 아주 우연히 알게 된 책이다.
요즘 준비하고 있는 이슬람 관련 상품기획 프로젝트를 위해 여러가지 문헌을 조사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도서관에서 이슬람 코너를 뒤지다가 우연히 눈에 걸린 책이다.
세 명의 사기꾼이란 누구인가?
바로 모세, 예수, 마호멧(무함마드)를 뜻한다. 해당 종교인의 입장에서 본다면 상당히 불경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저자 스피노자의 정신은 아리스토텔레스에 관한 방대하고도 충격적인 주석서를 집필해 서구 유럽에 길이 악명을 떨친 이슬람 종교 철학자 이븐 루슈드를 필두로, 교황으로부터 세 차례나 파문당할 만큼 알력이 심했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프리드리히 2세가 거론되는가 하면, 13세기의 유명한 연금술사였던 아르노 드 빌뇌브, 심지어 보카치오나 에라스무스, 마키아벨리까지 명단에 올랐으며, 르네상스기의 대표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인 폼포나치, 마찬가지로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 수학자이자 광인 천재인 카르다노, 에스파냐 출신의 신학자이자 의사인 세르베투스, 무슬림과의 화해를 주장하다 투옥된 바 있는 프랑스 출신 인문주의자 기욤 포스텔, 이탈리아 출신으로 범신론적 인문주의를 주창한 조르다노 브루노, 역시 이탈리아의 철학자 캄파넬라, 마찬가지 이탈리아 출신으로 전 유럽을 순회하며 무신론 강연을 펼친 자연 철학자 바니니, 그리고 마침내는 스피노자에 이른다. 베일에 가려진 이 책의 저자가 진정 누구냐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온갖 추측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으며 원제인 『스피노자의 정신L'esprit de M. Beno?t de Spinoza』을 따라 편의상 저자를 ‘스피노자의 정신’이라 표기하였다.
실은 내 석사 논문이 스피노자를 주제로 한 것이다보니 저자가 '스피노자의 정신'이라고 써있는 것을 보자 갑자기 내 주위가 환기됐던 탓도 있을 것이다.
어쨋든 본 서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도발적이고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발간된 시기가 17세기라는 점에서 더 그럴 것이다. 내용의 특수성 때문인지 정식 인쇄본이 아니라 필사본의 형태로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서만 공급되었다고 한다.
본 서의 내용은 한마디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를 비롯한 종교 일반에 대한 공격이라 할 것이다. 물론 주요한 공격대상은 기독교이다.
모든 종교는 지배를 위한 이데올로기적 도구일 뿐이고, 모든 신에 대한 언명은 허구이며, 신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연 그 자체를 의미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 근거로 고대로부터 근대까지의 다양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 다양한 사상가들의 이론적 주장를 들고 있다.
논거들을 보고 있으면 저자는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임이 분명한 듯하며 어쩌면 저자는 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에는 그 어떤 목적도 존재하지 않으며, 궁극의 원인이라는 것도 인간의 허상에 불과하다는 걸 밝히기 위해서는 그리 오랜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신의 목적'이니 '궁극의 원인'이니 하는 교의(敎義)야말로 오히려 지금까지 신에게 부여되어온 온갖 완벽의 경지를 일거에 박탈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를 증명하는 절차는 다음과 같다.
만약 신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든 다른 누구를 위해서든 어떤 목적을 두고 행위를 한다면, 그것은 신이 현재로서는 이루지 못한 무언가를 바라고 있음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신으로서 어떤 행위를 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한 시기가 있고, 언제든 그 이유가 생기면 일련의 행위를 바라게끔 된다는 얘긴데, 이는 곧 신을 매우 빈약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처사이다."
―제 2 장. 인간에게 보이지 않는 존재, 혹은 흔히들 신이라 부르는 존재를 상상하게 만드는 요인들
일단 위의 논리전개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종교 및 신에 대한 논거는 어떤 근거를 댄다해도 설명하기가 까다롭다. 일단 그 존재 자체를 증명하고자 하는 노력의 역사만해도 인류의 역사와 거의 맞먹지 않을까? 하다못해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마저도 데카르트에 의해 논증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 데카르트의 논증 또한 반박의 여지가 있다. '내가 존재'하는 것도 증명하지 못하면서 '신이 존재'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더욱 힘들 것이다.
어쨋든, 17세기에도 이런 식으로 신과 종교에 대한 '사회적' '정치적' 성찰이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다. 물론 지금보다는 훨씬 폐쇄된 사회였기에 저자를 밝히지 못한 상태로밖에 주장을 펼치지 못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익명이기에 더 솔직히 말했을 수도 있겠다.
생각해보면, 지금 현재 벌어지는 종교 및 신에 대한 논쟁을 보면, 이 책에서 전개하는 논거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다. 결국 종교의 기능을 사회통합적으로 볼 것인가, 계급지배의 관점에서 볼 것인가의 문제도 있고, 신의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만들어내기라도 해야할 것이다"(볼테르, 1770)라는 관점의 문제가 현재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책의 두께도 그리 두껍지 않기에 금방 읽어내려갈 수 있다. 다만 인용하는 사상가들이 우리에게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중세시대 사상가들이 좀 있다보니 좀 불편하기는 하지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특정 종교를 가지고 있건 아니건, 종교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건 믿음이 충만하건 한번쯤 읽어볼만한 부클릿이 아닌가 한다.

